황의선 개인전 <리바이어던 그 바다 괴물의 귀환(The return of the sea monster Leviathan)>


전시장소(Place) : 봄 1전시실(Bom 1st exhibition room)

전시일정(Period) : 2020.4.30~5.7

참여작가(Artist) : 황의선(Hwang, Eiu-sun)


(*4월 30일과 5월 7일은 설치,철수 일정이 겹쳐있으므로 온전한 전시 관람을 원하시는 분은 사전 연락 후 방문 바랍니다.)

작가노트(Artist Note)



리바이어던 그 바다괴물의 귀환 바다에 사는 괴물 리바이어던으로 불렸던 모비딕(백경)은 백색의 거대한 고래로 수많은 포경선을 침몰시킨 고래들의 수호자이며, 반대로 고래잡이들 사이에서는 악명 높은 적이다. 몸에는 그 동안 고래잡이들이 던진 작살과 그로 인한 흉터가 가득하지만 아직 까지 그 누구도 모비 딕을 잡을 수 없었다고 한다. “모든 것을 파괴할 뿐, 정복하지 않는 고래여, 나는 너를 향해 돌진하고 끝까지 너와 맞붙어 싸우리라. 지옥 한복판에서라도 너를 향해 작살을 던지고, 가눌 수 없는 증오를 담아 내 마지막 숨을 너에게 뱉어 주마“. 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딕의 본문에 나오는 이 문장은 인간이 자연을 공포와 숭고의 대상으로 여겼음에도 다른 한편으로는 정복하고 착취할 대상으로 자연을 바라보았음을 짐작하게 하는 글이다. 더 없이 거대하고 망망하며 예측 불가능하고 통제 불가능한 세계인 바다를 상징하는 모비딕은 유명한 계몽주의 철학자 토머스 홉스의 저서에서 국가이전의 상태인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이라는 무질서를 상징하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 무질서와 혼돈의 상태를 제어하고 제거해 나가면서 계약이나 합의로 만들어지는 국가를 상징하는 표상으로서 대립적이면서도 이중적인 아이러니한 형상으로 등장한다. 그래서 모비딕은 그저 바다 속을 헤엄쳐 다니는 한 마리의 “고래” 라고 규정지을 수 는 없는 것이다. 그것은 불가능으로서의 영역에서 존재하는 커다란 잠재성, 그 자체를 표현하기도 한다. 때때로 예측 불가능하게 닥쳐오는 사건이나 통제 불가능 한 힘은 재난으로 우리에게 닥쳐온다. 그렇다고 그것을 악이라고 규정할 수는 없다. 그런데 홉스는 혼란스러움을 가져다주는 흉폭한 모비딕에게 그 야성적인 흉폭함과는 반대되는 질서와 도덕이라는 표상의 의미를 부여한다. 그러나 질서와 통제를 행사하는 국가 권력은 아무리 그럴듯한 이유를 표방해도 야만성과 혼란을 지닌 바다고래를 길들이려는 인간들의 간교한 지혜와 더 가까울 수밖에 없다. 영화[모비딕]에서 모비딕 사냥을 나선 에이허브와 피쿼드호 선원들의 항해 또한 바다의 예측 불가능한 힘을 따라잡으려는 인간들의 무모한 모험으로 묘사되지만 그 모험은 끝없이 계속된다. 여기에서 바다는 존재론적 장이다. 거대한 파도, 수많은 물결이 일어나고 사라져 들어가는 장이다. 존재자들은 자신의 개체성을 잃으며 그 존재의 바다 속으로 사라져 들어간다. 침몰의 위험을 무릅쓰고 모비 딕의 가공할 힘을 따라가게 하고, 죽음의 공포마저 잊은 채 바다라는 존재론적 장을 향해 질주하게 하는 것이 인간의 ‘책략’이라면, 그것은 이성의 책략과는 아주 다른 종류의 책략이라 할 것이다. 나는 이 신화속의 동물인 바다고래 리바이어던의 속성과 그를 통제하려는 포경꾼들의 이야기를 통해 자연을 극복하고 지배하려는 인간의 욕망(자본에 대한)과 한편으로는 결코 인간에게 굴복하지 않는 자연의 힘을 떠올렸다. 그리고 어느 한 쪽이 승리하여 거대한 자연의 힘 에 굴복 했다고 할지라도 그래서 그 반대편의 인류의 힘은 사라져 보이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더라도 양쪽의 투쟁은 언제든지 다시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을 지난 역사를 통해서 알 수 있다, 그리고 자연은 결코 탐욕스러운 인간들에게 잡히지 않은 잡힐 수 없는 자연의 본성일 수도 있는 모비딕 처럼 끊임없이 변용된 힘을 가지고 다시 살아온다. 자연과 인간의 투쟁을 다시 이야기를 하자면 그래서 모비딕과 인간의 투쟁을 당연한 것으로 규정한다면 그것은 결국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커다란 자연으로 부터의 재난이면서, 반대로 자연이 감당해 내기 어려운 인간에 의한 자연생태계의 재난이다. 그리고 그것은 필연적으로 인간사회의 생태계라고 할 수 있는 사회공동체의 파괴를 가져온다. 자연은 한정된 자원만을 공급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로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갈등을 야기한다. 지금 만약에라도 끝없는 축적을 목표로 하는 자본주의 체제가 고갈되고 무너져가는 자연생태계에 위협을 느끼고 자연에 대한 착취를 가끔씩 멈추면서 가는 시스템을 발동 시키기라도 한다면, 그것은 이미 자본주의체제를 넘어서는 또 다른 어떤 시스템의 출현일 것 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자본주의라는 시스템에서 그런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그것은 마치 피쿼드호의 고래잡이 선원들이 모비딕의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더 많은 향유 기름을 포기하고 모비딕이 아닌 작은 고래들만을 잡으려고 격랑이 몰아치는 바다로 나가는 것과 같은 종류의 선택이기 때문일 것이다. 생태 환경적 측면에서 바라본 새로운 “인류세”의 시작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 21세기의 지질시대는 신생대 4기 충적세 시대에 속한다. 하지만 네델란드의 대기 화학자 파울크뤼천과 미국의 수생 생물학자 유진 토머스가 2000년대에 지구는 “인류세”에 접어들었다는 견해를 발표함으로서 지금을 어떤 관점에서 “인류세“라고 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새로운 화두로 떠올랐다. 지금까지의 지구의 지질은 오랜 시간동안 인간의 간섭을 받지 않고 변해왔다면 지금시대는 인간의 행위가 자연에 미치는 영향력이 엄청나게 커졌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인류세가 시작되었다는 것은 지구라는 행성의 시스템을 변화시키는 것이 인간이 되었다는 말과 같은 의미이다. 그렇다고 인류세 라는 말이 공식적인 지질대로 인정받고 학문적으로 수용된 상태는 아니지만 그러한 개념 자체를 부정하지는 못할 것 같다. 지구에서 인간이 존재해온 역사 전체의 시간을 놓고 보먼 20세기 후반부의 시간들은 너무나도 짧은 시간에 불과하다. 그렇게 지난 100년 동안 인류의 역사상 인간과 자연의 관계는 가장 급격한 전환점에 다다랐고 우리는 이미 그것을 목격하게 되었다. 그렇게 인류는 지금까지 와는 다른 커다란 문명사적인 이행기를 지나고 있는 것이다. 이전에도 크고 작은 이행기가 있었지만 그것은 사회 시스템에 관한 재구성의 문제였지 지금처럼 심각한 생태적 위기의 문제를 동반한 것은 아니었다. 이러한 생태계의 위기에 대해서 팰릭스 가타리는 30년전 세가지 생태학(1989년)에서 경고했던 세가지 위기 (인간 생태계. 사회 생태계. 자연생태계)가 자본주의 체계 전반의 위기와 함께 제어없이 중첩된 결과 이제는 거대한 악순환의 고리로 형성되어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인류에게 커다란 위협이 되고 있다고 해석했다. 2020년 봄 중국에서 부터 시작된 코로나19 질병의 전 세계적 감염사태는 우리에게 새로운 대안적 삶의 방식을 요구한다. 코로나19 발병의 직접적인 원인이 무분별한 자연생태계의 착취와 교란에 의해서 발생하게 되었는지는 지금으로서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없지만 지금은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국가간의 이동과 자국 안에서의 생활반경을 제한받게 되면서 최소한의 생활을 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러한 사태속에서 인간들은 사는 곳은 달라도 서로 유기적 관계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면서 공동체에 대한 책임과 역할이 무었 인지 생각하게 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한편으로 여러 종류의 생화학제품을 생산하는 다국적 기업들은 지금도 여전히 글로벌 자본으로 사세를 확장하면서 다양한 화학제초제와 그 제초제에 맞게 디자인된 유전자 조작한 종자를 생산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인간이 얼마나 자연을 인간의 필요(자본의 축적)에 맞게 디자인 하려고 지속적이고 끈질기게 노력 하는지에 대해서, 그리고 오늘날 자연이 얼마나 인간에 대항하는 힘의 균형을 잃었는지를 보여준다. 지금도 지구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자연재해와 인간들에 의해서 야기되는 재난들은 자연과의 힘겨루기에서 결코 인간이 우위가 아니라는 것을 확인해준다. 지금시대를 살아가는 인류가 근대이전의 자연을 대하는 마음 이였던 공포심과 숭고함을 간직한마음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다. 그렇지만 소수 자본의 책략에 휘둘리지 않고 인간도 역시 자연의 일부라는 자각과 함께 자연과의 공존의 길을 모색해 나갈 수 있다면 인류가 오랜 시간 동안의 진화를 거쳐 만들어온 인간고유의 유전형질을 보전하고 이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공간의 기억(memory of space), 32x42cm, Acrylic on canvas, 2020

공간의 기억(memory of space), 40x40cm, Acrylic on canvas, 2020

공간의 기억(memory of space), 45.5x53cm, Acrylic on canvas, 2019

그 바다의 시간(memory of sea), 40x40cm, Acrylic on canvas, 2020

먼 곳으로 부터 온(Came from a long distance), 46x38cm, Acrylic on canvas, 2020

먼 곳으로 부터 온(Came from a long distance), 46x53cm, Acrylic on canvas, 2019

작가 프로필(Artist Profile)


경성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과졸업 개인전 2020 리바이어던 그 바다괴물의 귀환 (예술공간 봄) 2016 먼 곳으로 부터 온 (사이아트 스페이스) 2015 다시 봄 ,그리고 또 다른 봄... (해안통 갤러리) 2014 고독한 미메시스 그리고 낮선 풍경 (을숙도 문화회관) 2012 공간의 기억 (E.T 갤러리) 단체전 2019 독립운동 100년 그리고 2020년(나무화랑) 2019 아시아의 쌀전 (전북 도립 미술관) 2019 언어, 타이포가 작동하는 즐거움(옥천 도서관 ) 1018 조국의 산하 “목포” (나무화랑) 2017 기억을 기록하다 “ 아름다운 이름 권희정” (테르틴 갤러리) 2017 6월항쟁 30주년 기념전 “낙원조국” (무국적아트) 2017 JAALA 국제전 (도쿄도 미술관) 2016 조국의 산하전 “우리 모두는 블랙리스트이다 ” (아리수 갤러리) 2016 삶, 자연에게 말걸다 세종문화회관 광화랑) 2016 끝나지 않는 노래 (서울 시청 갤러리 ) 2015 아낌없이 주고 날아간 나비 (서울 시청 갤러리 ) 2015 망각에 저항하기 (안산 문화 예술의 전당) 2014 천 개 의 바람 ( 3.15 아트센터) 2014 아픔으로 날다(서울시청 갤러리) 2014 나는 우리다 (서울 시립미술관 경희궁분관) 2014 아시아 환경 미술제 -재생, 상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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